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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수집 중 통탄의 순간
"... 돌이켜봐도 때는 늦으리.", kirhina가




1. 과거에는 그림체가 별로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냥 스쳐지나간 모 서클의 동인지.
나중에 본인의 취향이 바뀌거나, 모 서클의 매우 고퀄리티의 동인지를 발견한 후 "아, 그 동인지가 얘네 꺼였단 말이지!?" 하고 뒤늦게 그 서클의 동인지들을 찾아나서지만, 이미 찾을 수 있는 사이트가 남아있지 않다.
(가끔 본인의 하드에서 발견될 때가 있긴 하지만.)

2. 그토록 오래도록 찾아헤매던 모 서클의 동인지를 발견. 신나게 다운을 받는데, 그 중 딱 한 장만 깨져있다.
... 다른 사이트에서는 며칠을 기다려도 그 동인지가 올라오지를 않는다. OTL

3. 바쁜 일이 있어서 며칠 동인지 수집하러 일웹을 돌지 못했는데 ㅡ 어느 날 들어가보니 내가 푹 빠져있는 서클의 동인지가 올라와있었다.
기뻐하며 받으려하는데 ㅡ 이미 링크가 깨져있다. 혹은 엉뚱한 사이트로 연결된다.

4. 모 서클의 홈페이지를 가보면, 그동안 발매되어 있는 동인지들이 그득가득 발매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웹에서는 도무지 구할 수 없다.
언제 휴가 내고 토라노아나로 원정가고 싶은 심정이다.


이것도 위의 케이스 중 하나.
... 이거 2편 갖고 계신 분, 연락 좀 부탁...(퍽!)


by kirhina | 2008/07/05 13:18 | 나는 경험하고... | 트랙백 | 덧글(9)
이것이 본디 그들이 해야할 일이었다.
"종교란 무엇인가? 무엇을 해야하는가?!", kirhina가




`촛불 시국기도회'..나흘째 평화행진(종합) From 연합뉴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촛불미사 이후, 종교계의 촛불집회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 내일은 불교계에서 나선다 한다.
가장 중요한 명분은 촛불 시위 본연의 모습, 즉 평화집회로의 인도다. 확실히 행사의 법적 성격이 종교 집회가 된 이후, 정부와 경찰의 강경기조는 한풀 꺾였고, 시위대 내부에서 종종 발견되던 폭력행사도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나는 '운동' 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인들이 집회의 전면에 나선 것이 '운동가' 들의 측면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제들과 목사들이 나선 이후, 다치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나설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고 본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서로 때리고 다치면서만이 얻을 수 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동시에 나는 '이데올로기' 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로 나선 종교인들의 머리 속에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들어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건, 그들이 무엇을 원하건 간에 ㅡ 그들이 나선 덕에 더이상 다치는 '어린 양' 이 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감사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사상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실천하고 있는가가 아니겠는가.


혹자는 말한다. 거리로 나서 촛불을 들려거든 신부복부터 벗으라고. 왜 종교인이 정치에 끼어드냐고.
나는 부정한다. 이것이야말로 본디 그들이 해야할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신부복을 입고, 십자가를 들고, 목탁을 치면서 한손에 촛불을 들 수 있다.

묻건대, 종교가 그리고 종교인이 ㅡ 이 세상의 어린 양과 중생들에게 해주어야 할 역할이 무엇이란 말인가.
다치고 상처입은 사람이 있다면 가서 끌어안고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이야말로 그들의 일이다.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달려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또한 그들의 일이다. 부조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는 것도 그들의 사명이다.
그들이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ㅡ 그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건 그들이 누구를 섬기건 간에, 그들을 참된 종교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일찌기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양이 비록 단 한 마리일지라도, 목자는 그 한 마리 양을 결코 버려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그렇기에 상처입은 사람, 괴로워하는 사람,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목자들 중 누군가는 그들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건 그리스도의 목자로서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물론 부처의 가르침을 쫓는 스님들 또한 중생 구제라는 사명을 안고 있으니 ㅡ 단 하나의 중생이라도 거리에서 상처입고 울고 있다면 그들을 위해 거리로 나서는 것이고.



물론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이 그들만은 아닐 것이다. 만인이 다 같은 신의 어린양이요 가련한 중생일진대, 촛불을 든 자만이 종교인들에게 위로받을 자격이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라도 촛불을 들고 아파한다면, 그들을 위해 몇몇 종교인들이 달려가는 것이 그들의 신앙에 비추어 잘못된 일이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장로'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틀림없이 그의 고민을 들어주는 목사가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목사도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에게도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들을 지켜주는 신부, 목사, 스님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확실히 신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그렇지 않은가? (아멘)

by kirhina | 2008/07/04 01:03 | 느끼고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1)
우정 ㅡ 아름다운 세상
"어쩌면 연출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kirhina가




사랑에는 끝이 없고 진정한 우정은 평생을 갑니다. From 백돼지님의 블로그에서 트랙백




자기들의 옛 친구를 잊지 못해 머나먼 땅까지 그를 만나러 간 두 청년의 마음.
그런 그들을 기억하고, 아직도 그들과 몸을 부대끼며 애정을 확인하는 한 사자의 마음.

상대가 사자가 아니라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건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고.
거기에 구구한 설명이나 의심 같은건 필요없다고 믿는다.

중요한건 이 영상을 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느끼는가? 그리고 무엇을 꿈꾸는가... 가 아닐까.


정말로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았다.
설사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ㅡ 누군가 아직도 이토록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남아있는 이 세상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이 이야기가 진실이라면 ㅡ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란 말인가.


그들의 변치않는 우정과, 이 아름다운 세상에... 건배!!



by kirhina | 2008/07/03 23:20 | 그리고 소망한다... | 트랙백 | 덧글(2)
바다 속의 우주괴물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SF소설.", kirhina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산수 공부하라고 보내준 주산 학원에서, 하라는 주산은 안하고 휴게실에 한가득 쌓여있는 책만 가져다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일찌감치 농땡이의 도를 깨달은 대신, 산수 및 수학하고는 완전히 담을 쌓은 인생을 살게 된 첫번째 계기였을지도 모르겠다고 ㅡ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쓴웃음을 짓고 맙니다만.

아무튼 그 시절에 무척 재밌게 읽었던 소설이 한 권 있습니다. "바다 속의 우주괴물" 이라고.
원제를 찾아보니 "The Kraken Wakes" 라고 되어 있네요. 작가는 존 윈덤, 영국인입니다. 미국판 제목은 Out of the Deeps 라고 하네요. (출처는 위키피디아입니다.)


어제 '세계전쟁 Z' 를 재밌게 읽었습니다만, 이런 류의 작품은 역시 긴장감의 에스컬레이트가 가장 중요하지요. 별 것 아닌 것 같았던 일이 심각한 위기임이 밝혀지고, 그 거대한 위기에 맞서싸우다 패배하고, 그 패배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의 어려움까지... 단계별로 증대되는 긴장감과 그에 비례하여 과연 주인공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기대감이야말로 재미의 핵심요소죠.
그런 점에서 보자면, '바다 속의 우주괴물' 은 제가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 중에 열 손가락, 아니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섬뜩한 긴장감으로 독자를 몰고간 걸작이었습니다.


스토리 스포일러


기자인 주인공은 아내 필리스와 함께 아프리카로 휴가를 떠나던 중 하늘에서 불덩이들이 바다로 떨어져내리는 것을 봅니다. 보통의 별동별들과는 완전히 다른 기괴한 불덩이들의 낙하에 불길함을 느끼는 주인공 ㅡ 나중에 알고보니 대서양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바다에 예의 괴상한 불덩이가 떨어져내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그 뒤로 선박의 침몰사고가 급격히 늘어난다는 사실도.

전 세계가 잇따라 늘어나는 선박 침몰사고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운데, 보커 박사라는 과학자가 수상쩍은 이론을 제기합니다. 예의 불덩이는 운석 따위가 아니라, 지구로 이주해온 우주인의 운송수단이다 라고 주장한 보커 박사는 그 우주인이 대체 어느 별에서 왔느냐는 기자들의 비웃음에 "목성" 이라고 대답합니다. 심해의 수압을 견뎌낼 수 있는 지구 외의 생명체라면 엄청난 중력을 자랑하는 목성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그러나 보커 박사의 경고는 미친 과학자의 헛소리로 치부되고, 선박침몰사고도 뜸해지면서 사람들은 이 사건을 잊게 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후, 해안지대의 외딴 마을 혹은 섬을 중심으로 기괴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얼마 전에 찾아갔을 때만 해도 분명히 사람들이 살고 있던 마을인데, 며칠 뒤 찾아가보니 마을은 그대로 있는데 사람이 아무도 남아있지 않는 겁니다. 식탁에는 음식과 술이 남아있고, 카드를 치던 흔적이라던가... 그 밖에도 여러가지 생활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사람들만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버린 상황 ㅡ 해변에는 뭔가 무거운 것을 끌고 간 듯한 자국이 바다로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이런 괴상한 증발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와중에, 보커 박사와 주인공은 이 수수께끼의 괴사건 취재를 나서게 됩니다.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해역의 섬마을을 돌며 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던 주인공 일행. 그러던 어느날, 마침내 그들은 사건의 실체를 목격하게 됩니다.
바다에서, 거대한 반구 모양의 전차가 해변으로 올라왔습니다. 사발을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에 반질반질한 재질을 가진 이 전차는 묵직한 움직임으로 마을로 기어올라오더니, 끈끈이주걱 같은 촉수를 내뿜어 사람들을 붙잡아 끌고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단 실종 사건의 범인은 바로 이놈들이었던 것이죠.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이 바다 전차에게 대항했지만, 총 같은걸로는 전차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었습니다. 주인공 일행도 위기에 처한 찰나, 다행히도 다른 섬에 머물고 있던 동료가 비행기로 전차를 공격하여 가까스로 녀석들을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세계는 보커 박사가 주장했던 목성인 침공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목성인들이 바다 밑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또 무엇을 위해 인간들을 끌고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계 각국은 바다 전차의 침공에 맞서 방어전에 나섭니다. 바다에 기뢰를 뿌리고, 해안에 군대를 배치하고 바다 전차가 나타나면 포격과 공군 폭격을 퍼부어 전차들을 격퇴했습니다.
이런 지구인들의 반격에 바다전차의 출몰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자, 목성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건 성급한 환호였지요.


다시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은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해수면이 조금씩 조금씩 오르기 시작할 때, 보커 박사는 이것이 목성인들의 또다른 공격이라고 확신합니다. 해저의 마그마 등을 이용해 얼음을 녹여 대홍수를 유발할 작정이라고 ㅡ 그러나 바다 전차의 습격과는 달리, 이 공격에는 대항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홍수가 시작되고, 주요도시가 물에 잠기기 시작합니다. 주인공과 아내 필리스도 홍수를 피해 피난을 나서지만, 대홍수는 그들이 피난한 콘월마저 고립시켜 버립니다. 주인공과 필리스는 절망하지 않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지만, 모든 문명과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살아남은 인간은 우리 부부 뿐이 아닐까...?" "지구는 결국 목성인들에게 이렇게 패배하는 것일까...?" 라는 두려움과 고독감에 자포자기 상태에 빠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상비행기를 타고 죽은 줄 알았던 보커 박사가 찾아옵니다. 박사는 그간의 소식을 전하며, 목성인들의 바다전차가 홍수를 틈타 여러 곳을 습격해왔지만, 이제 해저에 있는 목성인들을 공격할 수 있는 초음파 병기를 개발하여 세계 각국이 반격에 나섰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서서히 해수면이 내려가고 있다는 소식도.


소설은 여기서 끝납니다.



이 소설의 강점은 평화 속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위협을 잘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이 소설의 목성인들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을 시커멓게 뒤집고 정복전쟁에 나서는 침략자가 아닙니다. 그들은 지구인들이 눈치 못채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배를 침몰시키고, 그 다음엔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을 끌고가고, 그 다음에는 홍수를 일으킵니다. 지구인들이 그들의 위협을 모르고 있을 때, 혹은 과소평가하며 평화를 누리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착실하게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거죠. 작가는 목성인의 공격과 평화를 적절하게 교차-배치하면서 긴장감의 템포를 조절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의 목성인들의 존재는 실로 으스스합니다. 그들은 H.G 웰즈가 탄생시킨 화성인들과 달리, 단 한번도 그 실체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들이 인간을 잡아가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불명입니다. 아니, 그런건 둘째치고 지구를 공격해온 목적조차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정체불명의 생물체가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깊은 바다 속에 숨어, 호시탐탐 인간들을 공격할 기회만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 ㅡ 지금까지 본 외계생명체와의 전쟁 이야기 중에서도, 이 소설이 단연 압권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목성인들의 성향 때문입니다. 정체와 목적을 알 수 없다는 것만큼 두려움을 자아내는 요소도 드무니까요.



이 책을 다시 한번 추억하자면 ㅡ 정말로 손에 땀을 쥐고 봤다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수수께끼의 실종사건이 연이어 터질 때는 마치 호러 영화를 보는 것 같았고, 대홍수 이후 보커 박사가 날아왔을 때는 노아가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돌아온 비둘기를 발견 했을 때의 기분이 어땠을지 감이 잡히는 것 같았고... 정말로 그랬어요. 진짜 걸작이었습니다.

아무튼 만인에게 강력하게 추천하는 작품 중에 하나이긴 한데 ㅡ 국내에서 찾아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교보문고에서 검색을 해도 안나오니... 하긴 제가 이 책을 봤던게 벌써 20여년이 다 되어가는데, 어느 출판사도 다시 내주지 않았다면야 방법이 없겠죠. 헌책방을 뒤져보는 것 외에는.

... 그러고보니 저도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어떤 출판사에서 SF 작품 전집 같은거라도 내면서 끼워주지 않으려나요? (먼산)


by kirhina | 2008/07/03 12:44 | 더불어 추억하자... | 트랙백 | 덧글(8)
세계대전Z
"이건 재난물이야. 아주 정성들여 만든.", kirhina가







어떤 사람은 이 소설을 좀비를 소재로 한 일종의 SF 소설로 볼거고, 어떤 사람은 좀비와의 기나긴 투쟁을 그린 전쟁소설로 볼거고, 어떤 사람은 사회풍자소설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저한테는 이건 한 편의 재난영화였습니다.
한 권을 읽으면서, 내내 이 다큐멘터리(슈퍼 볼케이노)가 생각났을 정도.


재난을 다룬 영화나 소설 등의 경우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말까지 판에 박은 듯 흡사합니다.

발단은 대재앙의 징후가 몇몇 사람에게 발견된다는 것, 그러나 정부나 책임자들은 자신들의 통제력을 벗어난 사람들의 대혼란을 우려해 사실을 비밀에 숨기거나 혹은 행정편의주의대로 안이하게 대응하고, 그 사이에 몇몇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덤빕니다. 여기까지가 기승전결의 기 起

그리고 마침내 대재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뒤늦게 엄청난 재난에 경악하고, 그걸 막고자 부랴부랴 애를 쓰지만 재난은 너무나 쉽게 인간들을 유린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사회 시스템의 결함이 재난 앞에서 속속들이 드러나고, 그 와중에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비탄과 절망에 빠지죠. 여기까지가 승 承.

비탄에 빠진 인간들 중에서 냉정하고, 용감한 몇몇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혹은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합니다. 아니면 지금까지 노력해오던 사람들이 뭔가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을 때도 있고, 지금까지의 꾸준한 노력이 마침내 빛을 보기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재난이 한참 극복되려 하는 사이에도 인간들은 서로 시기하고, 욕심부리고, 다투고, 그러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내기도 합니다. 인간의 고결함과 인간의 추악함이 동시에 대비되는 부분이기도 하죠. 여기가 바로 전轉

그리고 마침내 노력이 성과를 거둡니다. 재앙은 저절로 끝날 때도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끝장을 보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튼 재난이 지나가고 비로소 평화 혹은 구원이 찾아옵니다. 갈등은 해소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없기를 기원하죠. 결 結 입니다.


수많은 재난물들은 이 구조에 그저 소재만 바꿀 뿐입니다. 그 재난은 화산이나 폭풍우 같은 자연재해일 수도 있고('폼페이 최후의 날', '볼케이노' 등) 화재 같은 인재일 수도 있으며('타워링') 전염병인 경우도 있습니다. ('아웃 브레이크')
그 외에도 외계생명체나 괴물의 공격을 그린 영화나 소설들도 이와 비슷한 전개를 취하는데 ㅡ 이 소설 '세계대전 Z' 의 경우 '재난' 의 정체가 '좀비' 일 뿐입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좀비 바이러스' 가 재난의 정체이니 전염병 + 몬스터의 결합이죠.


따라서 스토리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흘러갑니다.
중국이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몇몇 국가에서 좀비 바이러스의 1차 희생자들이 등장하지만, 각국 정부들은 혼란을 막기 위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고, 그 사이에 끼어들어 욕심을 부리는 몇몇 인간들 때문에 바이러스의 확산은 겉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좀비 바이러스가 대대적으로 창궐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숫자의 좀비들이 나타나 인간세계를 공격합니다. 인간들은 그들이 자랑하는 강력한 무기들을 내세워 좀비 대군에게 대항하지만 무참히 패배하죠. 엄청난 절망감이 살아남은 인간들을 엄습합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좀비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한 계획이 추진되고, 수많은 비극을 잉태하면서도 평범하지만 끈질기고 용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하는 고귀한 인간들의 노력 덕분에 마침내 인간들은 좀비의 공격을 저지하고 반격을 개시합니다.
결국 인간들은 자신들의 땅을 되찾고, 좀비들을 물리치는데 성공하지만 ㅡ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이 남긴 후유증은 인간 세계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깊이 남아 있다는 ㅡ 하지만 그래도 인간들은 오늘을 살아간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표지날개에 "브래드 피트에 의해 영화화되고 있다." 라고 씌여 있는데, 이 정도로 매력적인 이야기가 재난영화가 되지 않는다면 할리우드가 눈이 삔 것이겠죠.
이건 좀비 이야기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좀비는 이 이야기의 소재일 뿐, 주인공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좀비의 끔찍한 모습을 여러차례 묘사하지만, 결코 좀비에 촛점이 맞춰져 있지는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촛점을 맞추고 있는건 좀비와 좀비가 불러온 인류사회의 전면붕괴라는 재앙에 맞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노력입니다.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긴박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스크린 위에 펼쳐지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요.



덤) 재난 영화는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욕망, 이기심, 분노, 절망, 사명감, 명예... 그리고 사랑.
인류의 존망을 위협하는 거대한 재앙 앞에서 각각의 인간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눈여겨 보시길.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었고, 일본이 어떻게 되었고, 미국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좋고 혹은 각국에 대한 편견이나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라는 코드를 읽어내려 애쓰는 것도 좋지만 ㅡ 곁가지는 그저 곁가지일 뿐. 그렇지 않습니까?
by kirhina | 2008/07/01 22:09 | 나는 보고 듣고... | 트랙백 | 덧글(7)
전쟁
"오늘 하루는...", kirhina가





1. 마치 전쟁을 치룬 것만 같다. 지쳤다.

2. 그런데, 아직 끝난게 아니다.



* 대한민국 법원의 '일부' 공무원이 얼마나 고압적이고 행정편의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무례한지 오늘 하루 실감했습니다.
'공공의 적' 에서 엄반장님처럼 "전화를 끊어?! 공무원 새퀴가 전화를 끊어!" 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고 싶었... (회사라서 그럴 수 없지만. 쒸x)
by kirhina | 2008/06/30 19:01 | 느끼고 생각하며... | 트랙백 | 덧글(2)
진부하고 평범하지만...
"두 가지의 이야기를 만났다.", kirhina 가




1. 강철중 (공공의 적 1-1)


진부하고, 평범하지만, 친근한 이야기.


'공공의 적' 시리즈의 구도는, 어찌보면 뻔하디 뻔한, 진부한 이야기다.
겉으로는 멀쩡해보이는, 하지만 속은 썩을대로 썩어있는 사회악을 ㅡ 겉으로는 꼴통인, 하지만 속은 누구보다도 지독하게 정의를 실천하는 형사가 쫓아가 어떻게든 잡아쳐넣는다는 이야기다.
'꼴통 형사' 라는 컨셉은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시절부터 다이하드의 '존 매클레인' 에 이르기까지 숱하게 써먹은 컨셉이고, 그 꼴통 형사가 좌충우돌하며 어떻게든 정의를 관철하는 것 또한 흔해빠진 권선징악의 이야기다.

그러나 강철중은 재밌다. 그리고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온다.
강철중의 꼴통짓은 객관적으로 보면 막무가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만, 그의 그 막무가내 정의는 너무도 쉽게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다. 어째서?


강철중의 가장 큰 강점은 역시 캐릭터들이다. '공공의 적' 시리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따뜻하고, 또한 알기 쉽다. 바로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단순무식한 성격 때문에 직장에서는 애물단지로 찍힌 강철중, 그런 강철중을 맨날 못 살게 닥달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를 믿어주고 밀어주는 엄 반장, 강철중이 치는 사고의 뒤치닥거리에 바쁘면서도 멋적게 웃으며 그를 따라다니는 후배 김형사, 맨날 사고만 치는 아버지한테도 언제나 따스하게 웃어주는 강철중의 딸, 손을 씻었지만, 그래도 미운정 다 든 강철중이 부르면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안수나 용만...


강철중의 정의는 그런 사람들의 존재로 인해 정당화된다. 강철중의 정의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믿는 정의이자, 그런 사람들을 위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깡패를 잡을 때 이 놈이 이 세상 마지막 깡패라고 믿고 잡아. 이 놈만 잡으면 세상이 깨끗해진다고 믿으면서 잡아." 라는 강철중에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둥, 악은 뿌리뽑히지 않는다는 둥 하는 '공공의 적' 들의 잘난척하는 현실론은 먹혀들지 않는다. 강철중도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공공의 적' 들을 쫓는다. 강철중의 정의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믿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들이 믿는 정의이자, 우리들이 지키고 싶어하는 정의를 ㅡ 지독하리만치 끈질기게 지켜가는 남자, 그 남자가 바로 강철중 ㅡ 우리들의 히어로이다.


덧 1) 나는 강철중의 모든 캐릭터 중에서 엄 반장(강신일 분)을 가장 좋아한다. 특히 그가 마지막에 보여준 "칼침 맞으면 쪽팔리지." 는... 캬아아아, 반장님!!



2. 정의소녀환상


진부하고, 평범하고, 허전한 이야기


정의소녀환상의 주제의식은 어렵지 않다. "구세주 따위 바라지 말고, 정의는 스스로 관철하라." 정도가 되려나.
다른 사람이 보여주는 '권선징악' 그리고 '정의의 환상' 을 깨부수고, 스스로의 힘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라는 이 이야기의 주제의식은 ㅡ 사실 서브컬쳐 쪽에서는 매우 흔한 것 중 하나다. 사실 나도 적잖이 공감하는 주제의식이고.

그런데도 내게 있어, 이 작품의 평가는 ㅡ 최악에 가깝다. 솔직히 돈이 아까웠다. 시드노벨 중에서 호기심에 돈을 주고 샀다가 후회한 작품이 몇몇 있는데, 그것들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망도다. '환상처단자' 와 딱 동일한 수준의 실망도를 안겨준 탓에, 설사 2권이 나온다 해도 그닥 보고 싶지는 않다... 유감스럽게도 말이다.


이유? 이유를 말하라면, 앞의 '강철중' 에 대한 호평을 정반대로 뒤집으면 될 것 같다. 강철중의 인물들이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그래서 또 공감할 수 있는 인물들이라면 ㅡ '정의소녀환상' 의 등장인물들 중 독자인 나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캐릭터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마법소녀물' 이지만, 정작 그 마법소녀들은 오직 전투를 위해 쓰이는 '말' 일 뿐이다. 그들의 존재이유는 오직 전투 뿐이다. 캐릭터의 성격은 극단적이고 작위적이며, 그나마 그것을 음미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그들은 차례대로 등장하고, 차례대로 정리된다. 그것 뿐이다.
중간에 몇몇, 자기들의 사정을 드러내보이고 감정을 표현하려는 캐릭터들이 있긴 하지만 ㅡ 전혀 공감을 자아낼 수 없다. 공감을 자아내기엔 그들의 설정이 너무 진부하고, 또 너무 짧다. 진부한건 그렇다쳐도, 그 내용의 깊이는 그냥 "싸움질만 하면 너무 하니까, 그냥 곁다리로 붙여넣은" 것 같다. 누스나 소피아가 70년의 연극에 진저리를 치는 이유는 진부하지만, 그래서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해시켜줄 짤막한 에피소드 하나조차 제대로 된게 없다. 그냥 그들의 입으로 "나는 지쳤어요." 라고 말할 뿐인데 ㅡ 이래서야 공감을 자아낼 수가 없다. 그저 진부할 뿐이다.

주인공인 '나' (블랙 세피로트)는 좀 나은가 하면, 그것도 그렇지 않다. 이 주인공은 사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 고등학생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하는 짓은 그닥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 고등학생답지 않다. 기껏해야 '생리통을 너무너무 지긋지긋해 하는' 정도가 '평범함'의 전부다. 무엇보다 그노시스가 어쩌고 얄다바오트가 어쩌고를 너무나도 태연하게 풀어놓는 모양새가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고교생이 보여줄만한 모습인가? (차라리 '오덕' 이나 '동인녀' 같은 설정이 붙어있다면 이해해줄만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진부한 캐릭터를 싫어하지 않는다. 진부하다는건 많이 쓰였다는거고, 많이 쓰였다는건 그동안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어내어 팔렸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단순히 진부한 것만으로 그친다면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진부하다는건 그만큼 이해하기 쉬워야 하는데, 이 소설의 캐릭터들은 진부하기만 할 뿐 전혀 이해할만한 건덕지가 없다.
정신없이 싸우다보면 이야기는 끝나고, 8명+1명의 주요 캐릭터가 등장하는데도 누구 하나 반할만한 캐릭터도 없다는건 허무할 지경이다. (게다가 전부 꽃다운 마법소녀들인데도!)


강철중과 딱 하나만 더 비교해보자. 바로 전투다.

강철중의 싸움은 단순무식하다. 그저 주먹질이다. 막무가내로 욕을 해대고, 그저 주먹을 휘두른다. 그야말로 개싸움이다.
그런데, 보는 관객들에게는 강철중의 주먹의 무게가 느껴진다. 소박한 믿음에 근거한 소박한 분노를 실은 그의 주먹은, 그 무엇보다도 무겁게 느껴진다. 화려한 격투기 기술도 아니고, 그저 개싸움의 막주먹일 뿐인데도.
그래서 강철중이 마침내 적을 두들겨 패서 쓰러뜨렸을 때, 관객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화려하지도 않고, 호쾌하지도 않은 막싸움인데도.

정의소녀환상의 싸움은 화려하고 거창하다. 스케일이 다르다. 미사일 하나가 작렬해도 그 미사일이 뿜어내는 물리적 충격력의 단위가 물리공식과 함께 독자 앞에 던져진다. 공방이 한번 이루어질 때마다 엄청난 단위의 숫자가 오고가고, 화려한 수식어가 그것들을 장식한다. 세계의 운명을 건 싸움답다.
그런데도 와닿지 않는다. 주인공이 이겼는데도, "이겼나보다" 싶다. 그것 뿐이다. 카타르시스 같은건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투 과정이 실감나거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화려한 수식어와 천문학적 단위의 숫자들은 이야기와 독자를 유리시킬 뿐, 독자로 하여금 전투하는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게 만들지 못했다.



최종적인 감상은 예전에 '환상처단자' 를 읽었을 때의 감상과 동일했다. '겉멋이 너무 들었다.'
마니아적 감성과 자아의 과잉표출은 때로는 독자와 이야기를 유리시키곤 한다. 쓸데없는 설정에는 치중하지만, 정작 중요한 캐릭터의 알맹이는 독자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다. 과잉표출된 주제의식은 때로는 거북할 정도로 곧은 직구로 ㅡ 스크라이크 존이 아닌 독자의 면상을 노리고 똑바로 날아온다. 독자를 납득시키고 이야기에 매료시키는게 아니라, 독자를 때려눕히기 위해 날아오는 설정과 주제의식이다. '환상처단자' 와 '정의소녀환상' 은 이런 부분에서 똑같은 과오를 범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분히 '환상처단자' 발매 당시 벌어진 논쟁을 의식한 것이 분명해보이는 "마법의 힘이 관계된 순간부터는 설령 권총탄으로 공격헬기의 유리창을 뚫고 파일럿을 죽인다고 해도 당연한 일이 된다. 거기에 리얼리티를 따지는 바보들에게는 접시물에게 코 박고 자살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 라는 문장에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판타지물에서 '권총탄이 공격헬기의 캐노피를 관통할 수 있느냐 없느냐' 를 가지고 따지는 바보들 못지않게, 이 작품의 작가도 (환상처단자의 작가와 마찬가지로) '리얼리티' 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 이야기건 캐릭터건 주제의식이건 ㅡ 진부하고 평범할 수 있다. 그게 나쁜게 아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쳐버린다면, 그래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면 ㅡ 그건 '이야기' 로서는 실패작일 뿐이다. 오늘 본 두 개의 '진부하고 평범한' 이야기는 그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들었다.




덧 2) 시드노벨 홈페이지에서 이 작품의 평을 읽다가 광고카피의 오묘함을 깨닫다.


2008년 1월. 시드노벨 기획팀은 뿌듯한 희망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세심한 디테일이 돋보이는 설정, 명확하고 이상적인 주제의 표현, 이 모두를 아우르며 별과 같은 광채를 발하는 작품을 발굴해냈기 때문이다.


... 확실히 설정의 디테일은 세심했고, 주제의 표현은 명확했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먼산)



덧3) 이걸 영화 밸리에 올려볼까, 도서 밸리에 올려볼까 고민하다 끝내 때려치웠다. (쿨럭)


by kirhina | 2008/06/30 00:41 | 나는 보고 듣고...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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